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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7  기술은 거들 뿐  (8)



미국 피츠버그에 위치한 카네기멜론 대학교(CMU)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 센터(ETC). 내가 작년 8월부터 살고 있는 곳이다. 농담 아니고 프로젝트에 치이다 보니 실.제.로. 이곳에서 살다시피한다. 장소마저 메인 캠퍼스와는 조금 떨어진 강변에 있어 한 번 들어오면 안 나간다.

1998년 Computer Science 단과대학과 Fine Arts 단과대학의 협력으로 설립된 ETC는 '좌뇌와 우뇌 모두를 위한 석사 프로그램(The Graduate Program for the Left and Right Brain)'이라는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 학제간 융합을 전제로 한다. 기술과 예술 모두를 이해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Entertainment Technology 분야 혁신제품 및 사건을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ETC의 복도>

실제로 2006년 가을학기 신입생 57명 중 컴퓨터공학과 출신이 50% 정도, 예술 분야에 있다 온 친구들이 30% 정도, 나머지는 그밖의 다양한 분야(물리학, 문예창작, 건축, 산업디자인, 심리학, 음악, 신문방송학 등등) 출신들이다. 다양한 분야 출신들이 함께 부대끼면서 서로 배운다.


<2006.8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촌티가 좔좔...^^;>

신병 훈련소(Boot Camp)라고도 불리는 첫 학기 수업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우선 가상세계 만들기(Building Virtual World)라는 수업은 4명이 한 팀을 이뤄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나 동작 인식 센서, 레이저 포인터 인식 등 다양한 가상현실 체험 플랫폼을 활용해 게임이나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작품 등을 만드는 수업이다.

4명의 팀원은 각각 프로그래머, 모델러, 페인터, 사운드 엔지니어 등의 역할로 나눠니는데 프로그래머는 보통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친구들이, 모델러나 페인터는 예술 쪽을 전공한 친구들이, 그리고 사운드는 음악이나 그 외의 전공자가 맡는다.

이 수업은 빡세기로 유명한데... 한 프로젝트에 보통 2주의 기한 밖에 안 주기 때문이다. 팀이 꾸려지고 아이디어 회의하다 보면 하루 이틀 지나가고 곧바로 제작에 돌입해야 한다. 기한을 맞추려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게임이나 영화, 테마파크 같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기한 준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BVW Round2>

이 수업의 목적은 단순히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있는게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시한 준수에 대한 개념 확립과 함께 팀 플레이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있다. 매 프로젝트마다 팀원들이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과 일을 하게 되는데. 당연히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므로,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아나가는게 중요하다. 결과물을 보면 팀 플레이가 잘 된 작품과 그렇지 못 한 작품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또 모든 프로젝트가 interim world 라는 중간 확인 단계를 거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최종 단계까지 가기 전에 상당한 수정을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물만 중시하는게 아니라 중간 단계 역시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 수업이 진행되면 다양한 주제 하에 약 80개 정도의 가상현실 세계가 만들어진다. 학기가 종료될 즈음 이 중 15개 정도가 선정돼 연말 메인 캠퍼스에서 Building Virtual World Show 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이 행사에는 미국 각지의 게임, 애니메이션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체 종사자들이 찾아와서 쓸만한 인재를 찾는다. 지난 학기 만들었던 가상현실 세계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영상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12월 BVW쇼를 앞두고 리허설중인 ETC 학생>

Building Virtual World 수업 외에도 독특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Visual Story라는 수업에서는 말 그대로 영상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영화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압축한 것이다. 팀마다 DV 카메라를 지급하고 2주에 한 번 정도씩 다양한 주제의 영상물을 제작하게 한다.

또 하나의 독특한 수업은 즉흥 연기(improvisational acting)다. 이 수업에서는 즉흥 연기에 활용되는 다양한 트레이닝을 한다. 뜬금 없이 왜 연기?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대중 앞에서 제대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네 번째, ETC Fundamentals 수업은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에 대한 기본 교양을 가르친다.

결국 첫 학기 수업을 정의하자면 게임개발자가 아니면서 게임을 만들고, 영화제작자가 아니면서 영화를 만들고 연극 배우가 아니면서 연기를 배우는 셈이다.

첫 학기의 기본 집중화 교육을 마치고 나면 두 번째 학기부터는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9명 정도가 한 팀을 이뤄 매 학기 외부에서 수주하거나 학생들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실 석사 과정임에도 아카데믹한 부분보다는 너무나도 실무적인 접근을 하는 모습은 나에게 다소 어색한 기분을 안겼다. 물론 학생들이나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준비된 상태로 관련 업계에 많이 취직하는 것인지라. 또 카네기멜론 대학교 자체가 실전 학문으로 워낙에 유명하고, 실제로도 많은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온지라 이같은 모습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또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므로 앞으로 학문적인 부분도 점점 더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믿는다.


콘텐츠 산업과 기술(technology)의 접목이 이슈로 부각한지 오래다. ‘슈렉’과 ‘킹콩’처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3D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이런 추세는 음악, 만화, 게임, 출판 등 콘텐츠 산업 전 분야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술적인 창조력만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흘러가버렸다.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Entertainment Technology)'

우리가 흔히 콘텐츠라 부르는 것들이 미국에서는 Entertainment라 불린다.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들이 전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락물이니 이해가 간다.

그럼
Entertainment Technology는? 누가 이 용어를 제일 먼저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또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Google 검색창에 Entertainment Technology를 치면 최상단에 극장용 조명 컨트롤 회사가 뜰 정도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퍼진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현재 다소 기초적이고 학문적인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검색엔진에서도 CT를 치면 문화기술은 거의 안 나오고 ‘단층촬영(CT)’ 관련 내용만 수두룩하게 검색되는군. --;

참고로 영국에서는 창조적 기술(Creative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일본에서는 콘텐츠 테크놀러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내가 현재 이해하는 ‘Entertainment Technology’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키는 기술적 토대이다. 3년간 콘텐츠 산업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기술이 가진 능력과 역할이 일반 IT 산업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이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지만 콘텐츠 산업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접목했다고 해당 콘텐츠가 뜬다는 보장도 없었고, 최고의 기술은 아닐지라도 그것에 창의력을 잘 조화시킬 경우에는 최고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Final Fantasy: The Spirits Within (2001)>

너무 오래된 예라서 고리타분하지만, 전체 등장인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해낸 영화 '파이널판타지'는 기술에만 치중하고 내용 전개가 부실할 경우 어떤 실패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늘 거론된다. (사실 난 재밌게 봤다... ^^;)

또 최근
PS3와 X박스360이라는 괴물 게임기 사이에서 겉보기 스펙은 한참 떨어지는 닌텐도의 체감형 게임기 '위'가 독주하는 상황을 봐도 기술과 콘텐츠 성공의 관계는 애매하다.

이와 관련 지난해 8월 하이테크로 무장한 PS3와 재미로 무장한 위를 비교전망하는 패러디물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전망은 지난해 말 두 제품 출시 후 지금까지 맞아떨어지고 있다.



<PS3 vs Wii> 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

즉 '
Entertainment Technology'에서 말하는 'Technology'는 기술 그 자체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과물인 'Entertainment'를 돋보이게 하지 못 한다면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다.

물론 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책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수많은 콘텐츠 관련 기술 중 실제 콘텐츠 산업 현장에 접목돼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뽑아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적어도 콘텐츠 관련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데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막연하게 기술 자체를 위한 기술 개발에 국가의 자원을
투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얘기가 한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오늘은 이만 정리하려고 한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했던 유명한 대사 '왼손은 거들 뿐'을 살짝 바꾸면 '
Entertainment Technology'를 잘 설명하는 문구가 된다. 농구할때 왼손은 단지 거들 뿐이지만 왼손이 없으면 안정된 슛을 쏘지 못 하는 것처럼, Entertainment Technology에서 Technology 역시 Entertainment의 완성을 위해 존재하는 버팀목 역할을 할 때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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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은 거들 뿐 ^_^




<오리지널>



<케로로 패러디 버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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