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가 드디어 애플과 함께 DRM 없는 음악을 공급하는구나.

이미 몇몇 블로거들께서 관련 소식 자체는 발빠르게 전해주셨고.

<EMI, DRM 없는 음악 iTunes 스토어를 통해 공급한다>

<EMI의 반란, DRM제국 흔들리는가?>

전체 내용도 해당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MI 보도자료 보기>

<애플 보도자료 보기>

발표 내용의 핵심은 EMI 뮤직이 5월부터 DRM을 없애고 음질을 크게 높인 '프리미엄 디지털 다운로드' 상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EMI의 새로운 상품을 가장 먼저 채택하는건 애플의 디지털 음악 상점인 아이튠스 스토어다. 아이튠스는 256 kbps AAC 음질(기존 128 AAC)의 DRM 프리 음악을 $1.29(기존 99센트)에 판매한다. 기존 상품(128 AAC with DRM) 역시 계속 판매하며 30센트의 차액만 내면 이미 보유한 곡을 프리미엄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해준다.

순기능, 역기능을 떠나 EMI의 이번 조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주의깊게 지켜봐야겠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듣다보니 갑자기 딴죽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우선 EMI 웹사이트에 올라와있는 기자회견 실황을 들어보자. 웹호스팅이 6메가 이상 파일은 거부하기에 축하 공연도 삭제하고 기자회견과 Q&A 두개의 파일로 나눠서 올렸다.
기자회견 내용을 통째로 받으려면 EMI 웹사이트 링크를 이용하면 된다. -> <내려받기>
전체 내용이 한 40분 정도 되니까 다운로드 받아놓고 천천히 듣는게 좋을 듯 싶긴 하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말을 잘 하긴 잘 한다. (EMI CEO의 차분한 스타일과 비교돼서 더 그런가...) 특히, 스티브 잡스는 명분 만들어내는데는 선수다.

기자회견 내내 스티브 잡스가 견지한 주요 입장 두 가지가 있다.

<1> 오늘 발표하는것(디지털 음악에서 DRM을 없애는것)은 소비자들이 CD를 구매할 때 얻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재 음악의 90%(디지털 음악을 제외한 나머지)가 DRM 없이 판매되고 있다. 소니의 CD 복제방지 시도는 성공하지 못 했다.

1번의 발언을 통해 스티브잡스는 DRM 프리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재밌는건 소비자들이 항상 주장해왔음에도 음반사나 음악 서비스 업체로부터 외면 당했던 (애플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인 동조 의사를 밝힌 것은 최근이니...) 논리가 스티브 잡스의 한마디로 갑자기 너무나 당연한 대세처럼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라운 타이밍이자 놀라운 수완이다.

갑자기 EMI와 애플은 소비자의 권리를 너무나 아끼는 사업자가, DRM을 걸고 있는 나머지 음반사들은 기본적인 소비자 권리를 무시하는 사업자가 돼 버렸다. 스티브잡스는 올해 안에 아이튠스 전체 500만곡 중 절반 가량을 DRM 프리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협상 과정에서 '소비자 권리'는 이들 음반사를 압박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이번 발표는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상품의 추가'다.

이 역시 회견 내내 강조하는 부분이다. 특히 마지막 여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다. 하지만 이 대답으로 인해 스티브 잡스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질문은 "압축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음악에서 기존 상품(128 AAC)과 새 상품(256 AAC)의 음질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을텐데 가격이 20% 올라갈 명확한 이유가 있냐?" 라는 것.

스티브 잡스는 "우리는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 상품도 여전히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음질이 좋아지고 호환성이 높아진 음악을 구매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고 기존 상품에 만족하면 기존 상품을 구매하면 된다"고 대답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고, 선택의 여지를 남겨 줌으로써 소비자를 대단히 생각하는것 같은데, 사실 이 발언까지 듣고 나니 1번과 2번의 입장이 뒤섞여 머리가 아파진다.

스티브 잡스의 주장대로 DRM을 씌우지 않는게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라면 아이튠스의 새로운 EMI 관련 상품 구성은 'DRM 없는 128 AAC 음악'과 'DRM 없는 256 AAC 음악' 이어야 한다.

프리미엄 상품의 요건에 '좋은 음질'을 포함하는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던 'DRM 프리'를 프리미엄 상품에 끼워넣고 돈을 더 받겠다는것은 소비자들을 너무 띄엄띄엄 보는게 아닐까.

물론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30센트 싼 128 AAC 음질의 DRM 프리 음악을 사겠지. 때문에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상품 구성을 그렇게 한 것을 뭐라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번 신상품 출시에 대해 적어도 너무 당당하게 정의를 행하는 양 떠벌릴 필요는 없지 않나?

너무 까칠한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나마 전세계 최대 디지털 음악 상점을 운영하는 애플이 움직이니까 DRM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한다는것도 인정하지만...

단지 너무 열광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지켜보고 칭찬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듯 싶다. DRM과 관련한 변화는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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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기가 막힌 대답 또 하나.

질문: 디즈니(스티브 잡스가 발언권을 갖고 있는) 영화에서도 DRM을 삭제할 것인가?

대답: 예상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비디오 시장은 음악 시장처럼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90%의 콘텐츠를 DRM 프리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상황이 매우 틀리다.

음악에서 DRM을 없애는 당위성으로 활용한 발언을 거꾸로 비디오 시장에서는 DRM 폐지가 시기 상조임을 말하는 발언으로 써 먹다니... 정말 훌륭하시다.

이 내용은 지난 2월 스티브 잡스가 DRM 프리와 관련한 오픈 레터를 발표했을때 한 DRM 반대 단체에서 "아이튠스에 있는 인디 음악과 디즈니 영화에 DRM이나 먼저 없애고 그런 주장을 해라"고 쏘아붙였던 것에 대해서도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는 누군가가 그 질문을 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황당했던 질문과 대답.

질문: 80GB 아이팟이 20000곡의 128 AAC 음질 음악을 담는데, 256 AAC 음질 음악은 몇 개를 담을 수 있나? (이런 생뚱맞은 질문을... @.@)

대답: It's proportional. -> 비례(수학에서)의 문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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